서성용 작가의 작품에는 밤의 시간이 일관되게 흐른다. 달빛과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사물과 생명은 정겹게 다가오면서도, 동시에 손에 잡히지 않는 아득한 정서를 남긴다. 이러한 분위기는 작가가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자연과 밀접하게 지냈던 경험에서 비롯된 기억의 감각과 맞닿아 있다. 그는 당시의 기억을 구체적인 장면으로 재현하기보다, 남아 있는 촉감과 공기, 빛의 잔상을 점·선·면과 기본 도형의 언어로 압축하며, 무엇을 보았는지보다 어떤 감각이 남아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접근은 작가가 비유로 제시한 ‘지의류(lichen)'의 이미지와 이어진다. 지의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표면 위에 조용히 스며들어 흔적을 남기듯, 화면 속 형상과 표식들도 겹치고 침식되며 하나의 층위를 이룬다. 일부는 희미하게 떠오르고 일부는 지워지지 않는 자국처럼 남아, 시간과 기억이 표면에 축적되는 감각을 형성한다. 그래서 이 작업은 풍경을 묘사하기보다, 정겹지만 아득하고 신비로운 밤의 정서를—시간이 천천히 가라앉아 남는 상태로—관람객의 경험 안에서 환기한다.
written by ARTISTY, ⓒ ARTISTY Inc.
b. 1994
개인전(Solo Exhibition)
▪︎2026.02 / 마음에 핀 지의류(地衣類) (갤러리카페 여백, 서울)
땅 지(地)에 옷 의(衣)를 사용하여 지의류(地衣類)라고 한다.
지의류는 조류와 균류가 공생하며 형성된 존재로, 오랜 시간에 걸쳐 땅과 돌, 나무의 표면에 스며들듯 자리한다. 나는 이 지의류를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시간과 경험이 축적된 흔적의 형상으로 바라본다. 보이지 않게 쌓이고, 쉽게 지워지지 않으며, 표면 위에 남아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은 개인의 기억과도 닮아 있다.
나의 작업은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서 자연과 밀접하게 지냈던 경험에서 출발한다. 당시의 기억들은 구체적인 장면이라기보다 감각의 잔상으로 남아 있으며, 나는 이를 재현하기보다 추상화된 형태로 치환하고자 했다. 점, 선, 면과 원·삼각형·사각형과 같은 기초 도형들은 자연을 단순화하기 위한 도구이자, 기억이 압축되고 변형되는 방식을 시각화하는 구조로 사용된다.
작업 속 형상들은 명확한 대상을 가리키지 않지만, 서로 겹치고 침식되며 화면에 남는다. 이는 나의 삶 속에서 축적된 시간과 감정이 하나의 층위를 이루는 방식이며, 나에게 지의류는 자연에 입혀진 옷이자, 기억이 마음의 표면에 남긴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