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섭 작가는 일상의 복잡성을 단순히 설명할 수 없다는 통찰에서 출발하여, 그가 체험한 감각과 기억을 회화로 표현한다. 그의 작품은 대상 자체의 불변의 진실을 그리기보다는, 그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과 감정을 담아낸다. 작업은 서정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되며, 생각과 감각을 물리적인 행위로 변모시키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캔버스 위에서 물감을 뒤섞고 긁어내는 행위는 지나온 날들, 꺼내지 못한 말들, 이름 지어지지 못한 기억들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그의 작업은 잔상과 파편이 된 감각과 기억들을 모아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며, 감각의 본질과 기억의 속성을 깊이 탐구하는 예술적 탐색을 제시한다.
written by ARTISTY, ⓒ ARTISTY Inc.
생활과 삶은 쉽게 설명될 수 없다. 어제 점심에는 왜 만두를 먹었고 오늘 아침 일어날 때에는 왜 몸이 무거웠는지, 굳이 찾으려 들면 이유는 찾을 수 있겠지만 그런 이유만으로 나의 생활을, 더군다나 삶을 설명하기엔 무언가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나의 생활과 삶은 내가 몸으로 느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매일 다른 날씨와 햇빛, 하늘, 건물 벽에 그려진 빛과 그림자, 도시 틈틈이 솟아있는 나무들과 꽃, 바람과 공기, 스치는 냄새가 감각에 닿았던 무수한 순간들이 나에게 녹아 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랑과, 슬픔과 웃음이 나의 삶을 이룬다. 나는 회화로 이런 것들을 표현하고자 한다.
대상을 그릴 때에는 대상 자체를, 진실을 그리고 싶었다. 대상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하고 편하게 바라보기도 해보았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은 대상에게 불변의 진실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는 나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내 작업의 원동력, 구심점은 결국 ‘서정성을 나타내보임’이다. 노동집약적인 작업방식의 이유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언어로 표현되기 이전에 모든 생각은 흩어져 있다. ‘말’을 꺼낸 순간에는 한 가지의 생각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물리적으로 입과 혀를 움직이는 행동이나, 지금처럼 타자를 치거나 펜을 들어 글을 쓸 때 비로소 언어는 언어가 된다. 사고는 행동을 통해야 사고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기(painting)는 사고와 감각이 행동 그 자체로 변모하게 하고, 행동은 물리적인 실재가 된다. 물감을 캔버스 위에서 뒤섞고 긁어내며 나의 서정이 나타난다. 지나온 날들이 재료와 설왕설래(說往說來)하고 꺼내지 못한 말들이, 이름 지어지지 못한 채 모호하게 남겨진 것들이 캔버스의 표면 위에 모습을 드러낸다.
언젠가는 분명히 선명한 빛을 띄었을 감각과 기억들은 잔상과 파편이 되었다. 이 흩어진 이미지를 그러모아 분할 속에 재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