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late사라진 존재의 궤적과 잔존하는 생명의 층위
나의 작업은 사라진 존재의 궤적과 모호해진 실재의 경계에 대한 감각을 선(線)으로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이는 상실이라는 개인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육체적 소멸 이후에도 기억의 기저에 잔존하는 대상을 붙잡고자 하는 절실한 행위가 화면 위 반복적이고 중첩된 선의 흐름으로 축적된다.
초기의 작업에서 선들은 유령처럼 흩어지거나 엉키며 부재의 중량감을 묵묵히 견뎌낸다. 화면 속 여백은 단순한 물리적 비어있음이 아니라, 사라짐 이후에도 여전히 머물며 진동하는 에너지가 은거하는 공간이다. 이는 소멸한 것을 억지로 복원하는 일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지속되는 존재의 순환 방식을 증거하는 일에 가깝다.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 즉 기억의 층위를 더듬는 이 사유의 장은 존재와 소멸의 경계를 가로지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작업을 거듭할수록, 슬픔의 예각은 무뎌지고 기억은 새로운 생명과 탄생의 온기로 채워지기 시작한다. 작업의 과정 속에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 부재를 견디는 힘은 결국 '시간'이며, 남겨진 우리는 어찌저찌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이러한 내면의 변화는 화면 위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후속 작업의 선들은 한층 더 자유롭고 촘촘하며 다채로운 색채의 변주로 확장된다.
이 작업은 상실의 아픔을 넘어, 삶을 지속해 나가는 모든 이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이자 찬사이다. 부재의 대상이 희미해져 감을 자책하는 이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묵묵히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가장 찬란한 생명의 증거임을 선의 궤적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Translateb. 1990
개인전
2017 | 없어짐은 없다, Pink gallery, 서울
단체전
2016 | Cutting Edge-100, 평창동 서울옥션스페이스
2015 | 밸런스 코드, 쉐마 미술관. 청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