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Solo Exhibition)
▪ 2023.11 / 비행운(contrail) (project space GAZE, 서울)
▪ 2022.10 / marbling (갤러리 minnim, 서울)
▪ 2021.09 / 자유비행 (project space GAZE, 서울)
▪ 2021.06 / 일호식x아티스티 Collado Exhibition #5 (사운즈 한남_일호식, 서울)
▪ 2021.05 / 꿈과 동심과 찬란한 비상 (갤러리 초연, 서울)
▪ 2021.01 / 동심을 향한 비행 (갤러리 다온, 서울)
▪ 2020.09 / 동심을 찾아서 (갤러리 빈칸, 서울)
그룹전(Group Exhibition)
▪ 2023.12 / Hidden Agenda (project space GAZE, 서울)
▪ 2023.09 / 시간, 기억, 흔적 (project space GAZE, 서울)
▪ 2023.07 / 계속 (갤러리 모스, 서울)
▪ 2022.04 / 전달 (라메르갤러리, 서울)
▪ 2022.02 / 2월 그날은 이상하게도 유난히 따듯했다. (오솔갤러리, 인천)
▪ 2021.12 / 신인전 (착한갤러리, 서울)
▪ 2021.11 / 심연:못 (젊은인사, 서울)
▪ 2021.10 / 사색전시 (마루아트센터, 서울)
▪ 2019.03 / 공간:평면과 입체 (갤러리 아지트, 서울)
▪ 2017.09 / My Fantasia (용산 CGV, 서울)
▪ 2016.01 / SCOUT (갤러리 이마주, 서울)
▪ 2015.12 / 앙큼한양 (갤러리 자인제노, 서울)
아트 페어(Art Fair)
▪ 2023.08 / 아투어리 art 트레비어 (트레비어, 울산)
▪ 2022.03 / The Collection (더현대서울, 여의도)
▪ 2020.07 / 아시아프2020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서울)
레지던시(Residency)
▪ 2024.03~2024.06 / ARTISTY RESIDENCY with SHILLA STAY (신라스테이, 구로)
<동심 어린 비행과 흔적>
지나간 시간 뒤에는 그림이 남아있다.
어린 시절부터 남겨진 동심 어린 흔적들이 있다. 순수한 낙서, 행복했던 색, 슬퍼했던 자국과 불안한 선들. 어렸던 시간과 낙서가 쌓여가며 오늘의 그림을 만들어왔다. 삶의 과정과 형태는 그림을 그리는 모습과 닮았다. 목적과 의미를 모른 채 살아가는 모습은 무엇을 그리는지 모르고 이어지는 그림일까. 종착지를 알 수 없는 여정은 괴롭지만 축복이기도 하다. 각자의 일생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창조하는 예술가의 모습이 보인다. 모두가 다른 속도와 움직임을 이어간다. 주어진 것으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 또는 한없이 무기력한 모습. 때로는 움직임을 멈추고 한 곳에 머물러 쉬어간다. 지금은 온전한 삶의 의미를 알 수 없지만,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흔적이 의미 있는 것으로 남기를 바란다.
- 동심 비행
어린아이의 손에 쥐어진 색연필의 움직임은 불안과 주저함이 없다. 무력해진 마음은 오랜 기억 속 ‘동심’을 그리워했다. 종이에 그림을 그리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억 속 아른거리는 어린 마음이 살아 움직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색연필을 멀리 띄워 날린다. 그 기억이 이정표가 되어 색연필은 동심을 찾아서 비행하였다. 오랜 기억으로부터 거슬러오고 지금의 내 모습이 보인다. 곧이어 동심은 보이지 않지만 온전히 남아있음을 깨달았다. 어렸던 시간과 낙서가 쌓여 오늘의 그림을 만들어왔다. 작은 손에 쥐어진 색연필로 시작된 낙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 흔적
동심어린 영혼은 자유로운 비행의 흔적을 남긴다.
앞으로의 나날이 어린 시절 도화지에 그려진 낙서와 같기를 소망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성숙하지만 때묻지 않은 어른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삶이라는 도화지를 동심어린 흔적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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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자연물>
완벽한 자연물은 시들지 않고 늙지 않는다. 병들지 않으며 해충이 꼬이지도 않는다. 그러한 자연이 존재할 수 있을까? 생물의 특성을 이해하지 않고 완벽을 추구할수록 자연스러운 것을 미흡한 대상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자연을 대체한 인공물들은 자연물의 형상을 흉내 내고 있다. 관리가 필요 없는 인공 잔디 그리고 꽃과 나무를 흉내 내는 조화들은 우리의 생활 터전 안에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라는 인간이 건설한 인공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 삶 속에서 자연과 멀어질수록 자연의 특성을 경험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오랜 시간 생물을 판매하는 꽃집에서 근무하며, 자연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충돌하는 경험을 겪었다. 꽃잎 속에 숨어있는 애벌레를 발견하고 불쾌감을 드러내는 사람들. 그리고 식물 잎사귀에 붙은 거미를 발견하고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 꽃과 식물을 가까이하면 벌, 나비, 진딧물 등 다양한 곤충이 모여든다. 다수의 사람들은 자연을 가까이 하기를 원하지만, 생물이기에 받아들여야 하는 불편함은 회피한다. 그들은 시드는 것, 벌레가 공존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가짜 꽃인 조화를 선택한다. 그러나 조화는 꽃의 향기와 생명력을 품을 수 없기에, 차선일 뿐 만족하지 못한다. 그들은 시들지 않는 완벽한 자연물을 꿈꾼다.
나는 그것을 비판하거나 동조하려는 것이 아니며, 자연과 인공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욕망을 드러내고자 한다. 자연을 향한 인간의 갈망은, 자연을 흉내 내는 인공물로 형상을 드러낸다. 영구적이며 시들거나 썩지 않는다. 매끈한 재질에 단단하며, 플라스틱 혹은 세라믹같이 보인다. 이것은 인공물이 흉내 내는 완벽한 자연물이지만, 그 어떤 생물보다도 인위적인 모습으로 존재한다.